김디자이너님 감사합니다.

 

 

 

 




이번 주말에 찾은 순천 동천 벚꽃과 개나리가 만개 했습니다.

참 이번 주중이나 주중이 가장 이쁜것 같습니다.

가족단위 나들이로 강추합니다.






 


이 장소를 Daum지도에서 확인해보세요.
전라남도 순천시 조곡동 |
도움말 Daum 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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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전2030 등산카페 게시판에서 퍼옴.
부디 사랑하는 아내를 찾으셨으면 좋겠습니다.
------------------- 원문 -----------------
안녕하세요  ,,,,다름이 아니오라 사랑하는 아내를 찾고자 글을올리게 된점

부디 이해하여주세요     ...

이글을  부디 알려주세요   메일발송이나  네티즌 여러분이 볼수있도록 도와주세요

다름이 아니라  수원 장안지구에서 목격 하셨다는 분이 있어  실레를 무릅쓰고

글을 올립니다....     운영자님 ..네티즌 여러분 도와주세요 ...



첨부파일 0.jpg



 


제가 사랑하는 유일한 여자입니다. 저의 사랑하는 여자를 찾아 주세요. 행방불명 된 날은 2008.1.11입니다.11일 저녁을 먹고 장을 보고 집앞에서 전 장을 보고 온것과 집 사람의 쇼핑백을 가지고 올라 오면서 주차하고 오라고 한뒤 집에 들어왔습니다.


그러나 10분이 지나도 안들어 오길래 집앞에 나가 봤어요. 하지만 차량도 집사람도 없습니다.그후 지금까지 연락이 되지 않고 있습니다. 1월14일날  부산에서 차량을 보았다는 연락을 받고 급히 갔지만 헛수고 였고 . 또한 부산에서 거의 일주일을 찾아 돌아 다녔습니다.

집사람이 행방불명 됐을때 지갑이며 옷도 화장품도 없는 상황이고 당시 옷을 입을 때는 하얀색 코트 하고 검정 바지 그리고 검정부츠 입니다.


차량에 있는것은 등산화 하나와 운동화 뿐 어떠한것 하나 가지고 있질 않아요.혼자서는 밤에 무섭다고 잠도 제대로 청하질 못했습니다.

그런 당신이 없는 지금 어떻게 된지 제 마음 타들어 갑니다. 일도 할수 없는 상태이고  현재는 일을 그만두고 집 사람 찾는 일에만 집중하고 있습니다.


네티즌 여러분 사랑하는 제 아내를 꼭 찾아 주세요. 컴맹인 제가 블로그를 만들어 네티즌 여러분께 도움을 청합니다. 제가 너무나 사랑하고 아끼는 제 아내를 꼭 찾아 주세요. 꼭이요.


이름 : 홍성숙

나이 : 42살

키 : 153  정도

식당주방에서 일도 했구요.

부동산 일도 했어요.

제가 사는곳은 전남 여수시 국동 입니다.

 

집사람은 지금 핸드폰을 가지고 가지 않은 상태입니다.

 

차량을 가지고 있는데요.

 

차량은... 

 



대우차 에스페로 흰색이며  본넷 부분이 약간의 찌그러짐 있습니다.

타이어  휠캡은 두개가 포드 마크가 있어요.

 

차종 : 에스페로,    색상 :  흰색

번호 : 05소  1464  이며

 

제 연락처는  010-5147-2338,   011-251-9536  김종입니다. 


찾아주세요.  너무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http://blog.daum.net/kk9536/1844624

다니형의 주최하에 이루어진 쭈꾸미 벙개.
건대역 1번 출구에서 나와서 한 400m 가다보면 오른쪽 일층에 보임.
많은 사진을 못 남겨드려서 죄송요.
먹느라 바뻐서리 ~
쭈꾸미 완전 강추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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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으악님의 염장성 사진에 필 받아. 올려봅니다. 케케케~

오늘은 회사를 무단 결근하고,
예전부터 꼭~ 가고 싶던 빈센트 반 고흐 형님의 그림을 구경하려 간다.

참고로 오늘은 도전2030 새로운 주인장을 뽑는 역사적인 날이다.
나의 소신으로 하다형님을 추천했구.
내가 추천한 하다형님은 페어플레이를 원하시는 분이기에
혼자 눈 호강하고 온 삼백억을 용서해 줄 것이라 믿는다.


빈센트 반 고흐 형님의 간단한 프로필로 시작해 볼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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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Vincent Van Gogh 1853.3.30 Zundert ~1890.7.29일

Auvers-sur-Ois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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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젊어서는 신학 공부에 열중하다가 28세(1880년)때에서야 화가의 길로 들어섰다. 초기에는 렘브란트와 밀레의 화풍을 익혀 그 영향을 받아서 사실주의적인 어두운 느낌의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1886년에 파리로 가서 베르나르 등 인상파 화가들과 사귀면서부터 타는 듯한 열광적인 화풍으로 바뀌었다. 1888년에 남프랑스의 아를로 가서 한때는 고갱과 생활을 같이하면서, 그의 예술의 개화기를 맞아 후기 인상파의 대표적인 화가로 활약하였다. 그는 강렬한 주관에 의한 타는 듯한 열정적인 화풍으로 태양과 해바라기를 즐겨 그렸다. 그러나 정신병에 걸려 요양 중 권총으로 자살하려다 실패하고, 치료를 받다가 세상을 떠났다. 주요 작품으로 [감자 먹는 사람들],[해바라기],[자화상]등이 있다. 고흐는 일반적으로 렘브란트 이후로 가장 뛰어난 네덜란드 화가로 손꼽힌다. 그는 근대 예술에서 인상주의의 흐름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그의 작품 모두는 오직 10년 동안 만들어진 것이다. 색의 개념을 파괴하고, 거친 화풍과 결국은 그를 자살에 이르게 한 정신적인 고통이 표현된 그런 작품이 전부이다. 그의 걸작 중에 많은 자화상과 잘 알려진 [The Starry Night](1889)이 있다. 2차 세계대전 말에 소련이 독일로부터 철수할 때 그들은 많은 독일의 예술 작품을 함께 가지고 갔다. 이 명작들은 레닌그라드의 Hermitage의 지하에 숨겨졌다. 이것은 거의 반세기 동안 소련 비밀이었다. 그들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전시해 놓고 있다. 빈센트 반 고흐는 세느, 고갱과 더불어 네덜란드의 화가이자 드로잉맨으로 가장 뛰어난 후기 인상파 화가이다. 그의 삼촌은 세계적인 화상 Goupil and Co.의 상인이었다. 1869년 The Hague에 있는 지사에 일하기 위해 갔다. 1873년 그는 런던 지사에 보내졌고, 여관 여주인의 딸과 불행히도 사랑에 빠졌다. 이것은 여자와 함께 행복을 찾으려는 몇 가지 비참한 시도의 첫 번째였고, 그의 보상받지 못한 열정으로 그는 너무 상심했고, 곧 그의 일을 떠났다. 그는 1876년 무보수의 조교수로 영국에 있는 학교로 돌아갔고, 그의 도시에서의 비정함에 대한 경험은 종교적으로 열중하고 그의 제자가 따르도록 일깨워 주었다. 그의 아버지는 신교도의 목사였고, 고흐는 성직자로서 교육받았으나, 그는 1878년 그의 학업을 버리고 예비 목사로서 일하기 위해 벨기에 있는 the grim Borinage 주의 가난한 갱부들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의 열정으로 가난한 사람을 위해 그는 자신의 세계를 포기했고, 그의 학업을 포기했다. 그는 Borinage에 남았고, 가난과 정신적 병으로부터 구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예술이 그의 일이라는 것을 발견했을 때, 그것은 인간에게 위안을 주는 것을 의미했다. 이 때부터 그는 그의 새로운 선교활동을 시작했다. 혼자만의 열정과 함께. 그는 종종 극도의 가난, 영양 실조로 고통받았으며, 그의 삶에서 나머지 10년의 결과는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약 800개의 그림과 데생 작품을 그렸다. 1881부터 1885년까지 고흐는 네덜란드에 살았다. 때때로 하숙을 하기도 했고, 그의 헌신적인 동생 테오로부터 그의 작은 월급으로 고흐는 자금 지원을 받았다. 그의 휴머니즘을 유지하면서 그는 농부와 노동자들을 그렸다. 그 대표적인 것이 'The Potato Eaters'이다. 그는 테오에게 썼다. "나는 이 사람들을 존중하려 노력했다. 그들의 작은 램프 아래 감자를 먹으면서, 그리고 그들의 육체적 노동과 그들이 정직하게 그의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얘기하면서 그들을 존중하려고 노력했다." 1885년 고흐는 Antoine Mauve의 충고로 Antwerp로 이사갔고, 대학에서 몇 달 동안 공부를 했다. 대학의 교육은 그런 개인주의자에게 영향을 거의 주지 못했다. 그러나 1886년 2월 그는 파리로 이사갔다. 그곳에서 그는 피사로, 드가, 고갱, 슈레, and Toulouse-Lautrec등을 만났다. 이때 그의 그림은 인상주의와 사실주의 도덕성을 잃고 있는 일본의 목판의 영향을 받아 격렬하게 변하고 있었다. 고흐는 심볼과 색의 표현할 수 있는 가치에 사로잡히게 되었고, 그는 이것을 인상주의 화가가 그랬듯이 공기와 빛의 가시적 모습을 재구성 할 목적으로 사용했다. "내가 눈앞에 보이는 것을 정확하게 재구성하는 것을 시도하는 대신 나는 더욱 강렬한 나 자신의 표현을 위해 내 방식대로의 색을 사용한다." 라고 그는 말했다. 그는 말했다. "나는 인간본성의 무서운 열정을 빨간색과 녹색으로 표현하려고 시도했다. 그가 Seurat의 점묘법에 의해 영향받았던 때 그는 더 광범위하고, 정열적이고, 힘찬 필법을 찾아서 떠났다. 1888년 2월 고흐는 Arles(아를)에 정착했고 그 곳에서 그는 15개월 동안 200개가 넘는 유화를 그렸다. 이 시기에 그는 그림을 전혀 팔지 않았기 때문에 가난했고, 환각증세와 함께 정기적으로 재발하는 신경성의 질환으로 고생했다. Arles에서 그는 동업자를 찾는데 혈안이 되다시피 했고 결국 그해 말엽에 고갱을 만났다. 그러나 그 둘의 싸움의 결과로 그 유명한 사건인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귀를 자름으로 인해 그는 더욱 고통받게 된다. 이 사건은 그의 작품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으로 유명해진다. 1889년 5월 그는 자신의 요구에 따라 Arles 가까이의 St Ray의 정신요양소로 갔다. 그러나 그가 그곳에 있는 동안 그는 Starry Night와 같은 놀란 만한 작품을 만드는 일을 계속했다. 그는 그해동안 150개의 데생과 그림을 만들었다. 1889년 테오는 결혼했고, 1890년 5월에 전문가 Dr.Paul Gachet와 후원자와 같이 살고 있는 그와 가까운 Auvers - sur - Oise로 이사했다. 거기에서 그는 그의 모든 정열을 폭발적으로 쏟아 부었고, 그의 삶의 마지막 70일 동안 70개의 유화작품을 만들어냈다. 그러나 그의 정신적 고뇌와 압박은 점점 더 심해졌고, 1890년 7월 29일 권총 자살로 그는 죽었다. 그는 그의 일생동안 오직 한 개의 작품을 팔았다. (Red Vineyard at Arles; Pushkin Museum, Moscow), 그가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그의 예술 세계는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명성은 그 후에 빠르게 높아졌다. His influence on 인상주의, 야수파와 추상주의에 대한 그의 영향은 거대한 것이었고, 그것은 20세기 예술의 많은 다른 국면에서 나타났다. 그의 질풍 같고, 드라마 같은 삶과 그의 생각에 대한 굽힐 줄 모르는 의지가 그를 근대 최고의 문화적 영웅 중에 하나로 만들었다.


"Arles에서 그는 동업자를 찾는데 혈안이 되다시피 했고 결국 그해 말엽에 고갱을 만났다. 그러나 그 둘의 싸움의 결과로 그 유명한 사건인 고흐가 자신의 왼쪽 귀를 자름으로 인해 그는 더욱 고통받게 된다. 이 사건은 그의 작품 Self-Portrait with Bandaged Ear으로 유명해진다."


로 보아 고흐는 자신 스스로가 자른 것입니다.
---------------- 인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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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리 곳곳에 반 고흐 전시에 대한 포스트로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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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스트만 따라 가다보면 서울시립 미술관이 나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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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앞 정원도 이쁜다. 고흐 형님 기다리는 관계루 패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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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정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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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 입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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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켓은 이렇게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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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물관 로비의 모습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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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백억의 등장 짜잔~
초점이 안 맞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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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샵에서 한장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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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샵 분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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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샵에서 도전2030 누님을 우연히 만났다.
누님이 친절하게 커피를 사주신다.
반 고흐 전시관에 대한 애기,
반 고흐 의 인생에 대해서,
현제 전시되어 있는 그림중 유명한 것은 어떤 것인지 ^^

중요 정보만 요약하면,
전시관은 꼭~ 평일에 오라고 하신다.
주말에는 하루에 오천명의 방문자가 있어 그림을 감상하기도 힘들다 하신다.

현재 전시되어 있는 작품은..
대표작으로는 아이리스가 있고,
프로방스의 시골길 야경,
감자 먹는 사람들,
씨 뿌리는 사람,
노란집,
우편 배달부 조셉 룰랭,
그림을 보고 싶은면 아래 클릭,
http://blog.naver.com/skyculture?Redirect=Log&logNo=60044629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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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내 책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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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구에서 기념 촬영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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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층에 보시면 대형아트샵이있습니다.
다양한 기념품이 있습니다.
요 녀석은 요지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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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풀이는 안마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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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지인의 가이드로 맛집으로 이동
굴과 보쌈의 만남 ㅋㅋㅋ

보스누님 부탁으로 찾아간 행사장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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